하루의 시작에 가장 기대되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예상치 못한 사건이나 뜻밖의 만남, 막연히 바라던 꿈의 실현도 아닌 뻔한 드라마의 결말 같은 전날 밤새운 계획 따위였다.
전날 다 채우지 못한 고용주의 하루치 할당량은 죄의 대가처럼 고스란히 다음 날로 전가됐다. 미처 끝내지 못한 일들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그날 밤 속으로 사라졌고 마저 해야 할 일들은 먼저 어깨에 짐을 두른 채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일꾼들의 끝이 보이지 않는 줄 뒤로 다가섰다. 의기양양하게 짐을 고쳐 메는 이들은 다가올 운명을 모른다. 먼저 도착한 일꾼들이 짊어진 짐의 보자기는 터지거나 터질 기세로 땅에 끌리고 있었다. 개중엔 자기 짐을 잠자리 삼아 바닥에 깔고 엎어져 자는 일꾼들도 있었다. 처음 일을 받았을 때 사명감은 날이 갈수록 빛이 바랜 사진처럼 흐려진다. 잊히고 잊혀 가는 일꾼들, 성실한 게 죄인 그들의 자리는 이미 목록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제 차례가 올 것이라는 확신에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며 밤을 지새우던 일꾼들은 기다리지도, 떠나지도 않는다. 간혹 제자리를 이탈해 호명되는 극소수 일꾼들의 뒷모습을 보며 개처럼 제자리를 충직하게 지키다 연기처럼 사라질 뿐이다. 누구도 기억하거나 추모해 주지 않는다. 한때 불리던 이름은 이들의 기억에만 남아 있다. 잔인한 운명이나 우연 따위로 선택된 자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그렇다.
족쇄는 밖에서 채우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몸을 담가 온 자리의 바깥 세계로 자신을 내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거절로 인한 절망의 공포심이 자라난 내면에서 채우기도 한다. 이들의 공포심은 어디서 자라난 걸까.
아마 인내심이 한계를 넘고 개인의 우주가 팽창하기를 멈춘 뒤 자폭하는 지경에 이르자 체념이 갖다주는 안락함에 자신을 맡긴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오랜 제자리걸음으로 인한 권태가 누적되며 바깥 세계에 대한 갈망이 커졌으나 주변을 둘러보고는 자신의 보잘것없는 한계를 느끼곤 스스로 족쇄를 채운 것일 수도 있다. 더는 참을 수 없어 줄을 이탈했다가 바깥 세계에 자신의 명함을 내미는 것조차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돌아온 것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이들이 모두 바깥 세계로 탈출하는 것을 꿈꾸거나 상상하는 과정을 한 번씩 거쳤다는 것이다.
일꾼들의 발은 묶여 있지 않다. 오직 자신들이 암묵적으로 세운 질서로 정갈하지만 쓰러질 때를 기다리는 도미노처럼 정갈하게 줄지어 서 있을 뿐이다.

짐을 내려놓기만 하면 단번에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각자가 지난한 시간 동안 짊어지며 몸과 영혼을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늙어가는 데 일조한 짐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탈출의 첫 단계인 건 맞다. 하지만 짐을 내려놓기 전 자신 안에 꺼져가는 불씨를 먼저 되살리지 않으면 짐을 내려놓은 뒤 바깥 세계의 문턱을 넘기도 전에 되돌아가는 수가 있다. 가는 길이 험난하기 때문이다.
바깥 세계로 향하는 길에는 가시밭길이나 맹수 무리의 급습 같은 장애물은 일절 없다. 평평하게 잘 닦인 한 가지 길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부푼 기대를 안고 여정에 오른 자에게는 그만큼 유혹적이고 위험한 장애물이 없다. 이 길 위에서 자유의 몸이 된 일꾼들은 절제해 왔던 이상에 날개를 달고 상상 속을 마음껏 날아다닌다. 길을 걸을수록 상상하던 자유와 미래가 가까워지고 일꾼들의 가슴은 터질 듯 두근거린다. 하지만 여정을 나서기 전 이미 꺼진 불씨를 되살리는 것을 깜빡한 일꾼들이 마주한 바깥 세계는 발을 내딛는 것조차 쉽지 않다. 내면에 타오르는 무언가가 없는 이들에게는 저항할 힘도, 자신들의 특기인 인내심을 되살려 끊임없는 거절에 맞서 문턱을 넘고자 할 오기나 끈기도 없다.
꺼진 불씨를 되살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일꾼들은 제자리걸음을 멈추기로 한 뒤에도 한참이나 꺼진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제자리에 머물러야 한다. 만약 한 일꾼이 이 지루하고 반복적이지만 안락한 삶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면 그것을 끊고 나아가게 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면 그것 또한 괜찮다. 족쇄를 끊고 나아갈 용기와 의지만 있다면 이유는 없어도 무방하다.
사실 타오르는 무언가를 반드시 정확하게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단지 앞으로 다가올 예상 밖의 사건들에 맞설 끈기와 오기, 족쇄를 끊고 지난 시간 몸을 담근 세계를 불태우고 나아갈 의지만 있다면 충분하다. 이미 지난 시간을 없었던 것으로 치고 몽땅 불태운 뒤 떠난다는 것만으로 그들에게는 평생의 삶을 지탱해 온 힘을 넘어선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가슴 속에는 이미 개인이 그리는 미래의 청사진이 확실하다. 그것이 타버리지 않도록 수많은 시험과 장애물로부터 지킬 불씨에 장작을 넣고 계속 켜두는 것이 그들이 할 가장 큰 일일지도 모른다.
불씨를 켜둘 장작이 떨어지지 않는 한, 이들은 더디더라도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전혀 생각지 못한 어느 날 자신의 염원하던 작은 소망이 이뤄지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런 날의 반복이 그들을 계속 움직일 것이다. 어디로 나아갈지 목적지는 안 정해져 있는 것이 낫다. 모든 것이 정해진 것이 삶이라면 그만큼 지루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이들이 목적지를 확고하게 정해놓고 항해를 시작한다면 불태워버린 전생의 삶을 되풀이하는 격이다. 목적지란 정해져 있지 않다. 삶은 계속 움직이며 예측 불가능한 변수에 대응하는 일의 반복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어떤 삶을 살지 선택하는 것만이 그들의 목적이 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