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항 속의 금붕어는 한 뼘도 안 되는 공간에서 빙빙 돌며 관상용으로 보기 좋은 몸의 크기를 유지한다. 그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대가로 자신이 평생 그 작은 공간에서 산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나 금붕어는 어항을 벗어나 강으로 가면 몸집이 몇 배는 몰라보게 커진다고 한다.
그 꼴이 딱 나 같았다. 어디를 가든 숨이 막혔다. 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의 크기가 내가 발을 딛고 선 곳만큼만 허용된 것처럼 느껴졌다. 나를 둘러싼 방호벽이 부식된 철골 구조물 같아서 1초만 기대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아 항상 온몸이 아릴 만큼 긴장돼 있었다. 양옆 시야를 가리고 쉬지 않고 뛰는 경주마 같았다. 남들이 좋다는 곳에 가든 내가 가고 싶었던 곳에 가든 똑같았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만큼은 달랐다. 비빌 언덕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그가 창살을 비집고 들어와 석화된 내 몸을 자신에게 기대도록 끌어당기면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단지 내리쬐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미적지근한 바람이 피부 위 털들을 부드럽게 통과하는 것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난 서툴렀고 살결을 쓰다듬는 미풍이 피부를 파고들며 긁고 사방으로 튕겨 나가는 짐승의 발톱처럼 느껴졌다.
세상이 하란 대로 발목을 잡아먹는 늪에서 벗어나려고 쉴 새 없이 발을 굴렸는데 잠시 몸부림을 멈추면 펄 속으로 가라앉았다. 단 한 번 숨을 골랐을 뿐인데 어느새 코 아래까지 잠겼다. 진흙이 삼킨 몸은 축축했고 아늑했다. 잠들면 영원히 평온할 것 같아 안심됐다.
더 잠겨도 상관없다며 눈을 감았을 때, 머리는 진흙 속에서 멀쩡히 피어난 연꽃처럼 여전히 떠 있었다. 나사처럼 몸을 뒤틀었을 때 발끝에 치인 건 또 사람이었다. 나를 있는 힘껏 두 손으로 받치고 있는 여러 사람의 손들이 있었다. 결국 난 과거에도 그랬듯 그들의 손을 밟고 진흙 속을 헤쳐 나왔다.

펄에서 나온 뒤 몸을 덮은 진흙을 거둬내고 나니 숨겨져 있던 상처들이 드러났다. 차마 마주할 엄두가 안 나 가리기만 했던 그것들을 두 눈에 천천히 담았다. 바람에 부딪혀 든 멍부터 내 속에서 자라난 넝쿨이 피부를 뚫고 나와 얽히고설켜 낸 상처까지 다양했다.
그것들을 물에 씻기고 위에 약을 발라 보살폈다. 새살이 차오른 뒤에도 몇몇은 희미해진 반면 몇몇은 붉고 울퉁불퉁하게 흉터가 남았다. 이제 다시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 싶었을 때 조금 더 상처에 머물기로 했다. 세상이 괄시하고 업신여기는 상처를 어루만지는 시간 속에 최대한 오래 머물러 보기로 했다.
상처와 결핍을 직시하자 오히려 평안을 되찾았다. 그 안에는 씁쓸함과 잔상처럼 남은 자책이 있었다. 그것들을 모두 온전히 받아들이자 비로소 상처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흉터는 그대로였지만 더는 흉하게 보이지 않았다. 감춰야 할 것이 아닌 내가 계속 보듬어야 할 어린 생명처럼 느껴졌다. 천대와 무시, 경멸, 원망보다 그것을 헤아리고 작은 변화도 세심히 관찰하고자 정성을 들이게 됐다. 이해가 상처 위에 새살처럼 차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쩌면 그토록 되찾고 싶었던 삶을 손에 넣기 위해 한참을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굳이 안 가도 될 길까지 들어서서 헛걸음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적어도 지금 내가 가는 길목의 곳곳에는 나를 오래 기다렸다는 듯 환영해 주는 여러 표지판이 늘어져 있다. 지도 없이 처음 보는 표지판에만 의지해 걷는 고행이라 막연함에 종종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잦지만 계속 가다 보면 이 길 끝에 바라던 목적지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